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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헌 목록 〉19. 19世 〉6. <요재공>농암공휘경열행록실기(農庵公諱慶烈行錄實記)
1. 문헌 목록 〉19. 19世 〉8. <요재공>석현배남양홍씨부인행록(奭炫配南陽洪氏夫人行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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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요재공>이로재기(履露齋記)
履露齋記 玉川治東瑞龍山下洞壑環拘峰巒拱揖其中突而崇四尺封者故嘉善大夫趙公及其配淑夫人安氏之藏也嗣子寝郎夏榮營成一齋于其下名曰履露以寓攀栢羹墻之慕既而寝郎沒其胤壽弼仍附葬于此日必哭省霜露不廢時節薦享終始無怠盖趙氏始出玉川君中世有諱汝寬壬辰倡義殉節於錦山其貞忠大義輝映一世今壽弼遹追祖武克遵先訓則無愧爲賢父之子名祖之孫也壽弼之子樂鉉及其姑叔廬炅鉉以其畧記遠來請記遂檃括其語書此以還 이로재기(履露齋記) 옥천군 동세룡산 아래 동학이 둘러 보듬고 봉우리가 공수하고 읍한 그 가운데 우뚝하게 높히 四척봉분은 고가 선대부조공 밑 그 배위숙부인 안 씨의 유택이었다. 사자침랑 하영이 그 아래 재각을 짓고 이로(履露)로 이름하여 써 송백을 휘여 잡고 추모한 생각을 부치더니 미구에 침랑이 별세하고 그 윤자 수필(壽弼)이 인하야 이에 부장하여 날마다 곡하며 성묘를 사시에 폐치 아니하고 절제를 종시봉헌하였다. 대개 조 씨는 옥천군 때에 저명하였고 중세에 휘 여관(汝寬)은 임진(壬辰)에 창의하여 금산에서 순절하니 그 정충대의가 돈 세상에 빛나게 비치었다. 이제 수필이 이에 조부를 따라 능히 선훈을 준수한즉 현부의 아들이요 명조의 손자에 부끄럼이 없도다. 수필의 아들 낙현(樂鉉) 및 그 고숙 노경현(盧炅鉉)이 그 대략 기록한 것을 가지고 멀리 와서 기문을 청하므로 마침내 굽은 데를 펴고 모난 곳을 바로하야 이와 같이 써서 돌려보낸다. 완산 최병심 기(完山崔秉心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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